모욕죄 특정성, 모르는 상대방을 욕했다가 고소당했다면?
제목부터 하나 바로잡고 시작하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니까 괜찮겠지." 이 글을 클릭하신 이유가 이거라면요.
그 전제부터 다시 보셔야 합니다.
모욕죄 특정성은 글을 쓴 사람이 상대를 아는지 모르는지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 글을 본 제3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아볼 수 있는지, 그게 기준입니다.
그래서 실명이 이미 알려진 사람이라면, 정작 쓴 사람은 얼굴 한번 본 적 없어도 특정성이 인정될 수 있죠.
반대로 서로 아는 사이라 해도, 그 글만 봐서는 제3자가 전혀 알 수 없다면 특정성은 부정될 수 있습니다.
오늘 다룰 사건이 딱 이 기준을 정면으로 다툰 사례인데요.
기사에 익명으로 등장한 인물을 향해 댓글을 남겼다가 모욕 혐의로 고소당했지만, 특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불송치 결정을 받았죠.
1. 모욕죄는 어떤 경우에 성립하나
형법 제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를 처벌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조문은 짧은데, 실제로 성립 여부를 가리려면 확인할 게 순서대로 몇 가지 있는데요.
먼저 표현의 대상이 특정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특정성 요건이고요.
그다음 표현 자체가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경멸적 감정 표현, 즉 모욕에 해당해야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그 표현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면, 위법성이 조각돼 처벌 대상에서 빠집니다.
E씨 사건에서는 이 세 단계 중 특정성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다투어졌습니다.
실명을 쓰지 않은 인터넷 댓글이나 커뮤니티 글이라면, 이 특정성 요건을 충족하는지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문제거든요.
2. 특정성은 내가 아는지가 아니라 남이 알아볼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이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결정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결정인데요.
인터넷 댓글로 모욕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의 아이디만 알 수 있을 뿐, 그 밖의 사정을 다 종합해봐도 그 아이디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없다면 특정된 경우로 볼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 결정의 핵심은 판단 기준이 "글쓴이가 상대를 아는지"가 아니라는 데 있었는데요.
즉, "그 글을 본 불특정 제3자가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지", 여기에 있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댓글을 쓴 사람의 인식이나 의도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입니다.
정작 중요한 건 글에 담긴 정보량이거든요.
닉네임, 소속, 지역, 사진 같은 단서가 여러 개 겹치면 실명이 없어도 특정성이 인정될 수 있고요.
반대로 아무리 감정을 구체적으로 담아 썼어도, 알아볼 단서가 부족하면 특정성은 부정됩니다.
E씨 사건에서도 이 기준이 그대로 적용됐죠.
3. 기사에 「A씨」로만 나온 사람은 특정된 것인가
E씨가 댓글을 남긴 대상은, 사회적 관심을 받던 어떤 사안을 다룬 기사에 등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기사는 신원 보호를 위해 실명 대신 "A씨"라는 이니셜만 쓰고 있었는데요.
E씨는 그 기사를 읽고 "A씨"를 향해 비판 취지의 댓글을 남겼죠.
여기서 짚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A씨"라는 표현 자체가, 익명을 지키기 위해 언론이 고른 표현이라는 점인데요.
실제로 "A씨"라고 검색해보면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한 기사들이 쏟아집니다.
교통사고 가해자, 목격자, 제보자, 피해자,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이 다 같은 방식으로 "A씨"라 불리고 있었던 거죠.
즉 "A씨"라는 표현만으로는 제3자가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기사에서 추가로 알 수 있는 정보도 극히 단편적인 수준에 그쳤는데요.
그 정도로는 특정성 요건을 충족하기에 부족하다는 게 저희 판단이었죠.
E씨 본인조차 "A씨"가 실제 누구인지 몰랐다는 점도 함께 소명했는데, 다만 이건 핵심 근거는 아니었습니다.
핵심은 어디까지나 제3자의 시선에서 알아볼 수 있었는지, 그거였거든요.
4. 표현 자체가 모욕에 해당하는지도 따로 봅니다
특정성이 부정되면 사실 그다음 쟁점은 판단할 필요조차 없어지는데요.
그래도 저희는 예비적으로 표현 자체의 모욕성까지 함께 다퉜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보면,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걸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인터넷 공간의 단문 글에 모욕적 표현이 있더라도, 그게 자신의 의견을 압축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지나치게 악의적이지 않다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E씨의 댓글에는 노년층을 비하하는 거친 표현, 그리고 특정 집단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저속한 표현이 섞여 있었는데요.
다만 상스러운 욕설에 견주면 모욕의 정도가 낮은 축에 속했습니다.
유사한 표현이 문제 된 다른 사건들도, 사회비판적 맥락이 인정되면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경우가 있었고요.
여기에 더해 표현 일부는 그 인물 개인이 아니라 특정 집단 전체를 향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설령 특정성이 인정된다고 가정해도 모욕성 자체가 낮고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가 컸습니다.
5. 이 사건이 불송치로 끝난 이유
수사기관은 "A씨"라는 지칭만으로는 불특정 제3자가 대상 인물을 알아차릴 수 없다고 봤습니다.
특정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는데요.
특정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모욕죄의 나머지 요건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가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그 결과 E씨는 모욕 혐의에 대해 불송치, 즉 혐의없음 결정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건 두 가지인데요.
먼저 인터넷 댓글 모욕죄를 판단할 때는, 상대가 실명으로 노출됐는지 아니면 이니셜이나 닉네임처럼 익명 처리된 상태인지가 결과를 크게 가른다는 점입니다.
익명 기사 댓글이 걸린 사건에서는 특정성 요건이 다른 어떤 쟁점보다 먼저, 가장 엄격하게 검토되거든요.
또 하나는, 표현이 다소 거칠거나 무례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욕죄 성립요건은 특정성, 모욕성, 위법성조각사유라는 세 단계를 다 통과해야 완성되는데요.
이 사건처럼 특정성 하나가 결여되는 것만으로도, 나머지 단계는 판단할 필요조차 없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결과가 익명 대상 댓글 사건 전부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사나 게시글에 담긴 정보량, 댓글이 달린 맥락, 다른 게시물과의 연결 관계에 따라 특정성 판단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 비슷한 이유로 고소를 당하셨다면, 문제 된 글만 보고 제3자가 상대를 알아볼 수 있는지부터 차분히 짚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FAQ
Q1. 저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그래도 모욕죄가 성립하나요?
A. 특정성은 글쓴이가 상대를 아는지가 아니라, 제3자가 그 글만 보고 알아볼 수 있는지로 판단합니다. 몰랐다는 사정만으로 특정성이 부정되지도, 알았다는 사정만으로 인정되지도 않죠.
Q2. 실명이 아니라 닉네임이나 이니셜만 나온 글이면 항상 특정성이 부정되나요?
A.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른 정보와 결합해 제3자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면 특정성이 인정될 수 있는데요. 이 사건은 그 이니셜로 검색했을 때 전혀 무관한 인물들이 함께 나온다는 점이 특정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Q3. 모욕죄 불송치와 혐의없음은 같은 의미인가요?
A. 불송치는 경찰이 검찰에 넘기지 않고 수사를 끝내는 처분이고, 혐의없음은 그 불송치 사유 중 하나입니다. 증거 부족이나 법률상 범죄가 성립하지 않을 때 붙는 사유인데요. 이 사건은 특정성 요건 미충족을 이유로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받았습니다.
Q4. 표현이 다소 거칠었는데도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모욕적 표현이 있더라도 그 정도가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준이고, 의견을 압축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특정성 요건 미충족이 주된 불송치 사유였고, 모욕성 판단은 예비적으로 함께 검토된 쟁점이었죠.
작성자: 박재훈 변호사 (화이트법률사무소)
최종 수정일: 2026년 9월 8일
※ 이 글은 실제 처리한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의뢰인과 관련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인적사항과 기관명, 사건 배경 일부를 변경하여 재구성한 사례입니다.